
9월 2일에 방송된 EBS1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50회에서는 하상오가 연 매출 300억 원을 기록한 캔 식혜 사업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다시 도전에 나선 과정이 공개됐다.
10억 투자한 와인 터널
하상오는 세계 최초 감 와인 개발에 그치지 않고 약 100년간 버려져 있던 폐기차 터널을 누적 방문객 500만 명의 관광 명소로 바꿨다. 감 와인을 숙성하고 저장하는 공간이면서 방문객이 직접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장소로 꾸며 매년 수십만 명이 찾는 청도의 대표 관광지로 키웠다.
와인 터널은 1905년 개통됐다가 1937년 사용이 중단된 옛 철도 터널을 활용했다. 하상오는 이곳을 개발하는 데 약 10억 원을 투자했고, 총길이 1100m 가운데 약 700m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터널 내부는 사계절 14∼15도 안팎의 온도가 유지돼 와인을 숙성하기에도 적합하다.
특히 하상오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공간이 됐는데도 입장료를 받지 않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운영한다고 밝혔다. 벽과 천장에는 방문객들이 마시고 남긴 와인병이 이어져 있고, 오랜 시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흔적도 공간의 일부가 됐다.
서장훈과 장예원은 터널에서 20년 동안 숙성된 감 와인을 직접 맛봤다. 서장훈은 감으로 만든 와인의 맛을 쉽게 상상하지 못했지만 시음 뒤 달콤하면서도 향이 매력적이라고 반응했고, 장예원도 처음 경험하는 맛이라며 놀라워했다.
100만 병 쌓인 감 와인 공장
터널을 지나 공개된 생산 현장은 관광 공간과 또 다른 규모를 보여줬다. 공장 내부에는 40톤 규모의 초대형 와인 탱크 10개가 줄지어 있었고, 하상오는 현재 숙성 중인 감 와인이 약 100만 병에 이른다고 밝혔다. 서장훈이 가격으로 어느 정도인지 묻자 최소 250억 원이라고 답했다.
40톤 탱크 하나에는 와인 약 5만 병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을 보관한다. 탱크 아래에는 숙성 과정에서 생긴 찌꺼기가 가라앉고 맑은 술은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하상오는 위와 아래의 상태를 모두 살피며 맛과 숙성 정도를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이 눈으로만 봐도 잘 익었는지 알 수 있느냐고 묻자 하상오는 오랜 경험을 자신감의 근거로 들었다. 감 와인을 개발하고 생산 현장을 지켜온 시간이 쌓이면서 색과 상태를 보고도 숙성 과정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거대한 탱크를 유지하는 과정도 만만하지 않았다. 와인을 비운 뒤에는 사람이 직접 40톤 탱크 안으로 들어가 벽면과 바닥에 남은 찌꺼기를 제거하는 청소가 이어졌다. 관광객이 터널에서 한 잔의 감 와인을 맛보기까지 대형 설비를 직접 관리하는 작업이 반복되고 있었다.
서장훈과 장예원이 맛본 20년 숙성 감 와인도 이런 시간을 거친 결과였다. 한 병의 와인부터 100만 병 규모의 저장고까지 연결되는 현장을 둘러보면서, 감이라는 지역 특산물을 술과 관광 공간으로 확장한 하상오의 사업 방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두 채 별장에서 보내는 반년
사업의 규모와 달리 하상오의 일상은 소박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은 대구에 있고, 청도에 두 채의 별장을 마련해 1년의 절반가량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일 때문에 찾는 청도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형과 함께 지낸다는 여름용 별장에서는 아침부터 맨몸으로 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운동을 마친 뒤에는 야외에서 샤워로 땀을 씻고 직접 보양식을 끓여 먹었다. 수백억 원 규모의 사업을 일군 모습과 달리 화려한 소비보다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지내는 일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 생활은 사업에서 완전히 물러난 은퇴와는 달랐다. 대구의 가족 집과 청도의 별장을 오가면서도 감 와인 생산 현장과 와인 터널을 직접 살폈고, 새로운 일을 찾아 움직이는 생활을 이어갔다.
500만 원에서 시작한 사업
하상오가 처음부터 식혜나 감 와인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대학을 졸업한 뒤 26세에 시작한 첫 사업은 향어 가두리 양식업이었다. 경제학을 공부한 아들이 갑자기 양식장을 하겠다고 나서자 어머니는 “고기 키우라고 내가 널 대학까지 보냈냐”며 강하게 반대했다.
반면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막지 않았다. 사업 자금 500만 원을 내주며 첫 도전을 믿어줬고, 하상오는 그 돈으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정부 방침이 바뀌면서 향어 가두리 양식업은 불과 3년 만에 접어야 했다.
첫 사업이 끝난 뒤 하상오가 눈을 돌린 분야는 식혜였다. 집집마다 전기밥솥이 보급되던 시기에 남은 밥으로 식혜를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며 상품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나도 식혜 만들 줄 안다. 그걸 누가 사 먹냐”며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전 재산을 투자하고 보증까지 서며 다시 힘을 실었다.
하상오 역시 부담이 컸다고 돌아봤다. 사업이 실패하면 자신의 손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는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식혜의 핵심 재료인 엿기름을 대량 생산해 식혜 회사에 납품했다. 이후 파우치 형태 제품을 내놓았지만 예상만큼 팔리지 않자 포장 방식을 바꾸는 데서 돌파구를 찾았다. 당시 식혜 회사에 캔 음료 생산 시설이 없자 직접 캔 식혜를 만들어 납품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1993년 국내 최초 캔 식혜가 탄생했다. 제품은 출시 직후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하상오는 연 매출 300억 원 규모의 성공을 거뒀다. 서장훈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나온 제품이다. 나오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성공 뒤 하상오는 형제들에게 아파트와 차를 사주고 사업 자금도 지원했다고 밝혔다. 첫 사업부터 자신을 믿어준 가족의 도움을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 다시 나누는 방식으로 돌려준 셈이다.
300억 사업을 내려놓은 이유
캔 식혜의 성공은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독점적 우위가 되지 못했다. 제품이 크게 히트하자 음료 회사뿐 아니라 식품 회사와 제약 회사까지 시장에 뛰어들었고, 하상오는 “100개 넘는 업체가 뛰어들었다”고 당시 과열된 경쟁을 설명했다.
그는 수백억 원의 매출이 나오던 사업을 계속 붙잡는 대신 과감하게 내려놓기로 했다. 다른 업체와 비슷한 제품으로 경쟁하기보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때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 청도의 특산물인 감이었다.
감 와인의 출발점은 청도의 대표 특산물인 반시였다. 하상오는 이미 잘 알려진 포도 와인과 같은 방식을 단순히 따라가기보다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감을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식혜 시장에서 경쟁자가 급증한 경험 뒤에 선택한 만큼, 남들이 이미 뛰어든 시장보다 자신만의 원료와 브랜드를 만드는 쪽에 무게를 둔 셈이다. 그 선택은 이후 와인 터널까지 이어졌다.
하상오는 감을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 방법을 고민하다 “포도 말고 감으로 와인을 만들면 안 될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후 3년 동안 연구에 매달린 끝에 세계 최초 감 와인을 개발했고,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도 제품을 입점시켰다.
그러나 감 와인이라고 곧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백화점에 진출한 뒤에도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하상오는 제품을 더 밀어붙이는 대신 판매 방식 자체를 바꿨다. “청도의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고객을 초대하자”는 발상이 그 다음 선택이었다.
그 생각은 처음 등장한 폐기차 터널과 다시 연결됐다. 감 와인을 도시에서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청도로 직접 찾아와 숙성 공간을 보고 와인을 맛보게 만들면서, 10억 원을 들인 폐터널은 누적 500만 명이 찾은 와인 터널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하상오는 “돈을 벌면 사업 접고 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나이가 들어도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큰 성공을 경험한 뒤에도 새로운 일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 그가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였다.
연 매출 300억 원의 사업을 접고 감 와인과 와인 터널까지 다시 길을 만든 과정은 성공 뒤에도 다음 일을 스스로 정하겠다는 그의 태도를 보여줬다. 한 번 성공한 사업에 머물지 않고 실패할 때마다 다른 길을 찾아온 하상오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사진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